사랑이란 무엇일까.

그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
내 모든 걸 주고도 더 줄 게 없어 안타까운 것?
그 사람과 함께 해서 내 생이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찬란하게 느껴지게 해주는 것?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나는 오래 고민하고 사색하며 곱씹어볼수록 원래는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점점 더 잘 모르겠다고 느낀다.
사랑 또한 그렇다.
사랑에 관한 잡생각을 왠지 오늘따라 끄적여두고 싶어 끄적여본다.

제목에 써두었듯이, 이 잡생각은 드라마 ‘퍼스트러브, 하츠코이’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끄적여두는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드라마를 보지 않았는데 언젠가 볼 생각이 있다면 이 글을 더 읽지 마시길.)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은 길고 긴 세월 동안 여자주인공을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여자주인공이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음에도.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누군가를 잊지 않고 여전히 마음 한가운데 사랑으로 머금고 있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는 엄마와 사랑에 빠졌지만,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심장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당시 수술이 성공할 확률은 20% 남짓이었고, 내가 다시 수술대를 거친 후 눈을 뜰 가능성이 그 정도라는 건 갓 10대를 마친 아이에겐 너무 무겁고 어두컴컴한 터널이었을거라 짐작만 한다. 사실 잘 가늠이 되지 않으니까.

참고로, 아빠는 무척이나 여린 사람이다. 아빠는 살이 찢어져서 의사가 꼬매놓으면, 나중에 혼자 손으로 실밥을 툭툭 뜯어서 살이 아문 걸 보곤 병원에 다시 가지 않는 사람이었고, 대장내시경이든 위내시경이든 수면없이 받는 게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엄마에게 이유를 말하지 않은 채 이별을 고했다. 당장 수술실에 들어가면 다시 살아서 나올 확률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온전한 상태로 깨어날 확률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미리 엄마를 곁에서 떼어냈다.

물론 수술은 잘 끝났고, 아빠는 다시 엄마를 찾아갔다. 당시 사이가 참으로도 좋지 않았다던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넘어서 ㅋㅋ

드라마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내일 당장 죽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남자주인공은 그 질문을 하는 자신의 연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엄마는 그 당시 얼마나 황당했는지를 이야기하곤 했고 아빠는 피식 웃기만 했지만, 아마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싶었던 사람은 엄마였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는 엄마에게 말도 하지 않고 떠나버린 아빠가 정말 이상하고, 좀 나쁘다고 생각했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어쩌면 엄마가 정말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으니 축복이겠구나, 생각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길고 긴 터널 속에서 늘 마음에 지닐 수 있는 사랑을 품을 수 있었던 것 자체는 아빠 본인에게 큰 축복이었겠구나, 라고도 생각했다.
이제 더 늙고 보니, 나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소년에게 닥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불행과, 그 속에서 이미 만나버린 진짜 사랑을, 그 소년은 어떻게 느꼈을지, 나는 이젠 잘 모르겠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차피 태어나서 길어야 100년이면 다시 원래 있던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거라면,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내 모든 걸 다 바쳐 내주고도 늘 더 주고싶을만큼, 나보다 상대가 아픈 게 더 내게 아픔이 될만큼 누군가를 사랑해본다는 건.
우리가 그저 먹고 자고 똥싸고 남이 날 어떻게 볼지 눈치가 보며 두리번거리다가 죽는 ‘설계도대로 사는 삶’에서, 오롯이 ‘진짜 나’로서 삶을 살아보는 최고의 길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