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야, 아무도 너한테 관심없어.”
이 말, 한번쯤 들어보셨죠?

다 거짓말입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내 일에 관심이 많은지 피곤했던 적 없으신가요?
여러분이 피부로 느낀 그게 진짜고 진실입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미친 듯이’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왜이리 남한테 관심이 많을까요?
근데 왜 자꾸 어른들은 ‘사람들은 남한테 관심없다’고 그러는걸까요?

지금부터 사람들이 남한테 관심이 오지게 많은 이유 두가지에 대해 쉽고, 재밌고, 간단하게 알려드릴겁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의 오지랖과 평가질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겁니다. 운좋게 잘 먹힌다면, 이제 더이상 그런 것들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에 한걸음 가까워질겁니다. 어떨 때는, 어렴풋하게만 알던 걸 명료하게 아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거든요.

1막. 어른들이 당신에게 해준 가장 위험한 거짓말

“내가 나이 50 넘기고 60 넘기며 살아보니,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한테 관심이 그리 없단다. 그러니 너무 신경쓰지 마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외로 남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 그러니 신경쓰지 마라.

제게는 참 반가울 수 있는 이야기죠. 왜냐면 저는 인간이 삶의 근본적인 고질병인 공허함을 걷어내고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에 진심이거든요. 그 방법을 찾는 데 찐텐으로 관심이 많거든요.

제가 보기에 한 인간이 자신이 얻은 ‘삶’을 가장 원하는만큼 행복하게 누리기 위해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진짜 나로 존재하는 것‘인데. 도대체 그렇게 존재하는 게 무엇인지 적혀있는 ‘진짜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전에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다면,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이만큼 반갑고 도움되는 게 있을까요. 그러니 제겐 너무나 반가운 이야기죠.

그런데 저 말이 사실일까요. 진짜 남들은 여러분에게 관심이 없던가요? 진짜로?

저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 말은 틀렸습니다.

인간은 남에게 드럽게 관심이 많아요.

사실.. 이미 알고 있잖아요? ㅋㅋ

아, 저 이야길 해주시는 분들이 연배가 높으시니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이제 남한테 관심이 없어지는 거 아니냐구요?

… 그 은퇴하시고 귀농하신 어르신분한테 가서 한 번 여쭤보세요. 환갑 넘고 막내타이틀 다는 시골동네 가면, 남의 집 빤스 몇 장인지부터 온갖 뒷이야기, 근거없는 소문, 오지랖 장난 아니라는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실 수 있으실겁니다. 귀농까지도 필요없죠 사실. 동네 노인정 막내로 들어간 70 할아버지가 형님들(?!)한테 모함당하고 조인트 까인 이야기 들으려면 그냥 아파트 노인정만 취재나가도 될 겁니다.

이 말인즉슨, ‘남들이 나한테 관심 없대’라고 순진하게 곧이곧대로만 듣고 믿으면, 나중에 우리도 나이 70 먹은 후에도 여전히 여러분에게 관심많은 주위 사람들을 보며 멘붕에 빠질거라는 겁니다.

“아니… 남들은 나한테 관심없다더니 나 이제 70 넘었는데 왜이리 나한테 관심이 많지 아직도…?”

오늘은 이 문제에 관해 알아야 하는 중요한 것들을 간단히 살펴볼겁니다. 이걸 이해하고 나면, 훨씬 명료해질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외부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훨씬 더 자유로워지는 데 분명 도움이 될겁니다. 가보시죠.

2막. 불편한 진실, 그들이 당신에게 미치도록 관심 갖는 이유

1장. 당신의 불행이 그들을 춤추게 한다(샤덴프로이데)

남들은 왜이리 나한테 관심이 많을까요?
사람들은 왜이리 남한테 관심이 많을까요?
아니 그건 그렇고, 왜 어른들은 자꾸 피부로 느끼는거랑 반대로 말할까요?
사람들은 남한테 관심 없다는 말은 왜 하는걸까요?

사람들이 남의 일에 드럽게 관심이 많은 이유는, 그 ‘남의 일’이라는 게 내 자존심이나 존재가치, 컴플렉스, 열등감, 자존감 같은 것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사실 ‘남의 일’은 그 영향력을 따지자면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인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남들의 행복보다 불행에 훨씬 더 관심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 살던 동창 영훈이가 사업을 성공해서 수십억을 벌었다더라, 보다는. 서울대 갔던 영훈이 고시실패하고 취업 못해가지고 요즘도 계속 집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더라, 가. 요즘 되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왠지 회색빛인 나한테 훨씬 더 큰 안도감과 묘한 기쁨을 주거든요.

잘 나가던 OO이가 주식투자하다가 패가망신하고 이혼당했다더라, 가 그 때 공부도 못하고 어리숙하던 OO이 이번에 코인투자로 아파트 3채 사고 일 관두고 여행다닌다더라, 보다 묘하게 더 끌리는 이유입니다.

“아니, 인간을 그렇게 남의 불행을 보고 안도감이나 느끼는 말종으로 매도하다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둘 중 하나입니다. 본인의 삶에서 충분히 의미와 확신을 느끼는 성숙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위선자거나. 그 마음이 진심이 아닌 거짓이라면 위선자일 것이지만, 그 마음이 진심으로 나온거라면 당신은 위대한 작금의 시대에 정말 보기 드문 훌륭하신 분인겁니다. 정말 보기 드문.

샤덴 프로이데

다만, 이 이야기는 짚고 넘어가도록 하죠. 남의 불행을 보고 기분이 나아진다고 해서 그 사람이 쓰레기인 건 아닙니다. 당연히 그게 윤리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리 치면 어린아이가 들고 가는 치킨을 보고 배가 고파도 쓰레기인거고, 모르는 이성이 지나가는 걸 보고 성적으로 끌려도 쓰레기인거죠. 식욕, 성욕에 관한 건, 인간이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걸 어쩌나요. 물론 그렇다고 어린아이 치킨을 뺏거나 모르는 이성에게 무작정 다가가지 않듯이, 남의 불행을 보고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 또한 타고난 본능이지만 의지로 통제하고 제어해야 할 본능일 뿐입니다.

인간이 타인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느끼고 안도감을 느끼고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면 인간 말종 쓰레기라 느껴지시기도 하고 불편하다 느끼실 수 있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느낍니다. 아주 솔직하게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런 사람이 많이 보일텐데요..? 이건 세상을 염세적으로, 비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이미 연구로도 밝혀진 사실입니다.

독일 말중에는 ‘샤덴프로이데‘라는 말이 있습니다. 샤덴은 불행, 프로이데는 기쁨입니다. 이 말은 ‘남의 불행은 곧 나의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21세기 문명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 입장에서는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일본의 한 연구소가 실시한 실험에서 인간이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불행을 겪는 시나리오를 들으면 쾌감을 느낀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맛있는 걸 먹거나 돈을 따거나 칭찬을 받을 때 보상과 쾌감을 느끼는 뇌의 영역인 복측 선조체가 활성화되는 걸 확인한거죠. 참고로 이 뇌부위가 ‘도파민’시스템의 핵심영역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미 다뤘던 문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피카이레카키아‘라는 단어로 ‘남의 불행에 기뻐하는 마음’을 이야기했었거든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은 보편적으로 그랬다는 이야깁니다.

2장. 당신은 그들의 ‘존재가치 측정기’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내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지, 나는 충분히 존중할만한 사람인지, 나는 못났고 무능하고 쓸모없는지 같은 문제들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자존심과 우월감을 올려주는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관심을 덜 가지는거죠.

이 불편한 진실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갸우뚱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일관성있게 보이기 시작할겁니다.

예를 들어, 내가 잘 하고 있던 일을 완전히 망쳐버렸다고 해봅시다. 삶을 살면서 많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상반된 이야기를 합니다.

“니가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야. 니가 좋은 일이 많을 때만 곁에 있다가 힘들어지고 무너지면 연락 뜸해지는 사람은 걸러.”
“니가 좋은 일이 있을 때 곁에서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이 진짜야. 니가 힘들 때만 곁에 있어주고 좋은 일 있을 땐 은근히 침묵하는 그 사람을 멀리해야 해.”

뭐 어쩌라는 겁니까. 그쵸?

도대체 왜 이런 상반된 이야기들이 나돌아다니는걸까요? 그건 사람들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 두가지 이야기를 하나의 일관된 원리로 묶을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저 이야기가 더이상 헷갈리지 않게 될 겁니다.

좀 전에 잠시 말했듯이, 인간은 남을 보고 자신의 존재가치와 의미를 결정하고 자신의 열등감이나 컴플렉스에 대한 생각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분이 잘 되고 못 되고가 아니라, 여러분이 자기자신에게 좀 더 유리한 감정과 판단을 가져다주느냐에 따라 반응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과 관점이 각기 다르죠.

좀 더 눈에 보이는 사례가 현실에서 더 유용할 수 있으니까, 관심을 가지는 행동 대신에 연락하고 곁에 있는 행동으로 한 번 예를 들어보죠. (내 뒤에서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말고는 눈에 안 보이잖아요? ㅋㅋ)

여러분이 잘 나갈 때는 곁에 늘 있다가, 잘 안 될 때 연락이 뜸해지는 A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 사람은 여러분이 잘 나가는 게 곧 자신의 지위와 우월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인겁니다. 그러면 그는 여러분이 잘 나가는 일에 관심이 매우 많습니다. 근데 반대로 여러분이 갑자기 그 일이 잘못돼서 나락을 가버렸어요. 그러면 이제 연락이 뜸해집니다. 관심 없어요 이제 여러분 일에. 왜냐면, 이제 별로 나한테 유리한 감정이나 무언가를 제공하지 못하니까요. 그는 더이상 여러분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가끔 마주치면 인사치레는 하겠지만.

반대로 여러분이 잘 나갈 때는 은근히 연락도 안 되고 그러다가, 그 일이 잘못돼서 힘든 상황일 때 나한테 무지 관심을 많이 가지는 B가 있다고 해보죠. 그 사람은 여러분이 잘 되는 게 배아프고 싫은 겁니다. 나는 뭐 특별히 제대로 되는 것도 없는데 여러분은 승승장구하니 배가 아픈거죠. 그러다가 여러분의 잘 나가던 그 일이 망해버리고 나니, 열등감이 해소되어서 오히려 더 친절해지고 묘하게 텐션도 높아진 거 같은 경우가 분명히 있죠. 불편하지만, 그런 일이 있답니다 인간세상에는? ㅋㅋ

자, 지금 우리는 상반된 A와 B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들은 해석의 관점이 다를 뿐 일관성있는 동일한 원리에 입각해 행동한겁니다. 남의 불행이든, 행복이든, 그게 내 자존감을 높여주고 열등감을 줄여줘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면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고, 반대로 자존감을 위협하고 열등감을 강하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에 관심을 안 가지고 멀리하려 하는겁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예시로 든 이야기는, 곁에 있고 없고 연락을 하고 말고의 더 적극적인 문제지만. 그저 ‘관심을 가지고 안 가지고’는 훨씬 쉽고 간단하고 에너지도 안 드는 행동이라는걸요. 즉, 유독 친구가 잘 나간다고 할 때는 소식을 들어도 시큰둥하다가, 걔가 잘 안 됐다니까 사람들하고 만나는 자리마다 ‘너 걔 소식 들었냐’며 침을 튀기는 건 훨씬 힘도 안 들고 간편한 일이니까, 아무래도 행동의 변화가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나겠죠.

“어우, 그러면 뭐 누굴 만나나요. 이 외로운 세상, 아무도 안 남아나겠네!”

그래서 1명이면 많은겁니다.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철학자 니체는 ‘잠언과 성찰’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라 로슈푸코’를 엄청 좋아했다고 하죠. 라 포슈푸코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진실한 사랑이 그렇듯이, 진실한 우정도 거의 없다.”

3장. 내면이 텅 비어버린 삶

제가 생각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남들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몰두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삶의 중심에 아무 것도 남아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우리가 그저 사회가 제시한 대로, 많은 사람들이 알려주는 대로 살아왔다면,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자기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들은 자기 삶의 중심이 무언가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몰두하느라 남에게 관심을 쏟을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반대로,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기자신의 삶에 무언가가 없죠.

제가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은 정말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남의 일에 대해 물고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면서 세월을 보낸다는겁니다. 정말 어떨 때 보면 걸신들린 것처럼 남의 일에 관심을 두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인터넷에서는 소위 ‘현생을 살고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을 높이 사는 경향이 있지만. 제가 보기엔 그들은 그냥 인터넷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을 뿐 똑같습니다. 현생 사는 인간도 인터넷을 종일 들여다볼 여건이 안될뿐, 틈만 나면 남의 일에 관심두느라 10년, 20년, 30년을 흘려보냅니다 ㅋㅋ 사람들하고 밥먹을 때면 늘 ‘이 부서의 누가 이랬다더라’, ‘그 후배가 뭘 어쨌다더라’ 이야기꽃을 피우며 도파민에 절어있고, 탕비실에 가면 늘 남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결국 내 삶에 크게 몰두할 것도, 전념할 것도 없는 대부분은 남의 일을 가십거리 삼아 그 공허함을 달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내 삶에서 무언가 충만감이나 만족감, 가치나 의미를 찾지 못해서라면. 사람들이 남의 일에 관심이 드럽게 많은 건, 결코 쉽사리 피할 수 없는 문제일겁니다. 왜냐하면, 삶에서 내가 의미있고 가치있다 확신할만한 무언가를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3막. 이제 우리가 ‘진화’할 시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아무것도 할 건 없습니다! 뭘 어떻게 하나요 ㅋㅋ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이 많은 건, 우리가 어떻게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타인의 삶은 타인의 것입니다. 그건 그냥 내비두면 되는거예요.

다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그 지대한 관심과 오지랖, 평가질과 험담에 반응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사는 내내 남들은 어떻게 사나 관심을 가지면서 사는 걸 일종의 ‘도피처’로 삼고 지내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사람들이 그러는 걸 지켜보며 살아야 할겁니다. 이건 불가피합니다. 단,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이 관심, 시선, 평판, 험담 같은 것들로부터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져야만 합니다.

이건 그 자체만으로 우리의 삶을 훨씬 더 윤택하고 쾌청하게 만들어줄 것이기도 하고. 이 정신적인 자유를 쟁취하는 게, 제가 늘 말하는 ‘진짜이야기’를 찾을 준비를 마치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야 합니다. 계속 남들이 내게 보이는 시선과 평판,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휘둘리는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용기를 내서 온갖 공허하고 열등감, 불안에 가득한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진화할 것인가. 이건 일종의 ‘진화‘에 가깝습니다. 그 정도로 지금껏 살아온 종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사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그만큼 상상 이상으로 상쾌하고 청량감 넘치는 일상을 영위하게 될 겁니다.

Epilogue

우리가 어떻게 남들의 시선과 외부의 평판에서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질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하나씩 이야기해나갈겁니다. 지금 이 글(영상)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싶기도 한데 사실은… 그랬다가는 이 글의 분량이 수만자를 넘어갈 거 같아서… 일단 오늘은 참는 걸로 하고. 앞으로 제가 마인드엔지니어로서 해드릴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나갈테니까 많이 기대해주세요!
혹시 오늘 이야기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요? 떠오른 경험이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제가 여러분을 위한 무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위대한 모험에 가장 유용하고 가치있는 무기를 제작해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대장장이 휴’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