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노와 udio를 활용해서 작곡하는 법 좀 알려줘봐.
꽃피는 봄이 오면, 이라는 곡이 있다.
BMK라는 가수의 곡인데, 내가 예전부터 퍽 좋아했던 가수다.
가사 내용이 잘 기억나진 않는데, 유독 이 곡은 제목이 그 문장 자체로 그냥 좋았다.
(사실 곡제목에 느끼는 내 감상은, 곡 가사랑은 1도 관련이 없는 거 같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언젠가’를 꿈꾸고 상상해보며 그렇지 않은 현실을 버티기도 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지금 이 쉽지 않은 시간들이 지나면, 이런 식의 말들로 시작하는 혼잣말을 나도 참 많이 했던 거 같다.
지금도 종종 그러는 거 같고.
근데 뭐랄까.
어느 순간엔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 같다.
꽃피는 봄이 오면, 이라는 저 말이 내 눈 앞에 펼쳐지기 전에.
그 전에 영화가 끝나버린다면? 하는 생각.
처음엔 ‘별 걱정도 다 한다’ 그랬고,
언제부턴가는 아찔했고,
지금은 날 가장 다정하게 만드는 것 같은 그 생각.
니체라는 철학자가 그랬다.
인간은 낙타에서 사자로, 궁극적으로는 어린아이로 성장해나간다고.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이며 현실적인 인간상인 ‘말세인’과 대비되는 ‘초인’을 이야기하던 그는,
그저 시키는대로 순종하고 지시대로 따르던 ‘낙타’에서,
과거의 관습과 각본에 저항하고 일갈하는 맹수인 ‘사자’가 되고,
마지막에는 매순간 지금 여기에 가장 내 마음가는대로 충실하고 기껍게 삶을 노니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
인간이 가장 탁월한 존재로 변화해가는 과정이라 보았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나에게 입혀진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여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영원히 그 모습으로 머물지 못한다는 ‘유한함’에 대한 자각.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의미로 ‘제행무상’을 말한다.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말은 힘들고 버거운 현재에서 잠시 벗어나 언젠가 다가올 포근하고 화창한 ‘그 때’를 기대하게 하지만,
그 인간적이고 너무나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그 기다림과 기대가,
어떨 때는 가장 사무치게 강렬한 회한과 절망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절감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병헌 배우가 연기하는 ‘동석’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엄마를 평생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엄마가 어떤 아저씨네 집에 첩으로 들어가서 사는 바람에, ‘동석’은 늘 그 집 형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고 소위 ‘개취급’을 당하면서 참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후반부로 가면서 ‘동석’은 자신의 오해와 엄마에 대한 애틋함을 점점 되찾는다.
그 계기는 자신의 엄마가 암말기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을테지만,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존재한다.(자세한 건 드라마를 보시라.)
몸도 제대로 가누기 어렵고, 더 살 날이 그리 길진 않은 상황에서 ‘동석’은 엄마가 보고싶다는 백록담을 보려고 한라산을 오른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자, 동석은 자기가 사진을 찍어다주겠다고 하고 대신 백록담을 찍어다주는데.
드라마 마지막에 자기가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은 셀프동영상이 재생된다.
거기서 ‘동석’은 말한다.
“나중에… 나중에, 눈 말고. 꽃피면 오자. 엄마랑 나랑. 둘이. 내가 데꼬 오께. 꼭.”
인간은 늘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 말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저 말은 꽤나 수많은 인생에서 물거품이 된다.
아빠를 먼저 떠나보낸 ‘나의 인생’이 그랬듯이.
아빠를 떠나보낸 후, 나는 저 말을 곱씹을수록 내가 좀 더 지금 이 순간에 따뜻해지고 다정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내가 좀 더 성숙해지고 너른 마음을 지니게 되어서가 아니라.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서야 멀쩡했던 다리의 고마움을 깁스를 한 동안만 느끼곤 하던 내 아둔함이,
깊은 후회와 상처로 새하얗게 타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나와 함께 있는 많은 사랑하는 존재들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그 고마움을 누리길 권한다.
물론 아쉽고 힘들고 비어있고 고장도 나있고 기스도 나있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들이 많이 끼어있겠지만.
그럼에도 지금 여기 눈앞에 있지 않은가.
그 사실 자체만으로, 지금 이순간이 ‘꽃피는 봄’이다.
언젠가 그 봄이 다 가고 나면, 뒤돌아보며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가슴치게 될 지도 모르는 그런 ‘꽃피는 봄’.
바보들은 꼭 몸으로 겪어봐야 안다.
그래서 나는 몸으로, 내 삶으로 겪어보고나서야 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왜 책에서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돌림노래처럼 해댔는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처럼 바보일까.
아니면 나와는 달리 바보가 아니라서, 내 이 바보같은 몇마디 말로도 소중한 걸 깨달을 수 있는 현인일까.
후자이길 바란다.
나는 당신과 아무 관련도 없고 마주칠 일도 없겠지만.
그냥.
누군가가 또 나처럼 아프진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