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개화'를 위한 첫번째 필요조건, 고통

자기개화. 자기개화를 위한 필요조건. 준비요건이라고 하자. 첫째, 충분히 고통받아야 한다. 충분히 고통받기만 하면 다 진화한다고 말하진 않겠다. 이건 너무나 큰 고통 속에서 괴로움을 견뎌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이자 편견이니까. 모든 영웅서사와 신화에서 아직 영웅이 되지 못한 주인공이 백발이 무성한 스승이나 조력자를 만나는 건 다 깊은 이유가 있다. 우리에겐, ‘자기개화’를 일으켜줄 계기가 되는 존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 필요조건도 있어야 하고, 그 첫번째는 충분히 고통받는 일이다. 정반대의 상상 자, 그럼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냥 상상만 해보자는거다. 이 세상은 물론 따스하고 우리를 사랑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거고 그 자체로 너무나 아낌없이 보살펴줘야 할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한 번 현실과는 정반대의 상상만 살짝 해보자는거다. 전혀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런 정반대의 상상을. ...

삶에 들이닥치는 고통을 철저히 이용해먹는 세가지

삶은, 불확실하다. 몇 번을 써도 저 말에는 먼지 쌓이지 않는 것 같다. 인생이라는 여행에는, 지도나 내비게이션 같은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통신장애가 있어서 결국 언젠가 어디선가 우리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불확실한 결과가 그저 잠시 발목을 삐는 것이라면 그래도 웃음짓고 툭툭 털고 넘어갈만한데. 반드시 그런 가벼운 불확실함만이 우리를 찾아오진 않는다. 가끔은 눈 앞이 하얘지고 코에서 피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아득하게 극심한 고통이나 어려움이 우리를 집어삼키려 달려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과연 그게 선택인지, 사실은 아직도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일에 ‘선택’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

주위의 탄식을 이겨내는 일의 가치

끔찍한 운전재능과 주위의 탄식 나는 차를 평생 사지 않지 않을까 생각했다. 30대가 되고 한참이 지나서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내가 운전하는 것보다, 남이 운전해주는 버스나 지하철을 좋아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버티고 버티던 나는, 결국 신체적 안전을 위해 차를 샀다. (결국 코로나에 걸렸지만.. ㅋㅋ) 부산에 있는 중고차 매매시장에서 차를 샀는데, 운전면허를 장롱에 넣어둔 지 10년이 넘었던 나는 처음 집에 차를 끌고 가는 것부터 동생에게 운전을 부탁해야했다. 집에 차는 가져다놨는데, 차에 손이 가질 않았다. 도로연수를 받았다. 사흘 간 도로연수를 받은 후, 동네에 차를 끌고 나갔던 나는 다시 근 두달을 차를 몰지 않았다. 운전을 하면서 금세 온몸을 가득 채우는 긴장감과 피로감이 나에게 운전을 할 수 있겠냐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 차를 한번씩 몰기도 했지만, 나는 무척이나 둔하고 익히는 속도가 더뎠다. ...